[애플] 내 낡은 서랍 속의 클릭휠, 아이팟 미니 핑크를 다시 만나보다.

안녕하세요.

플라이프입니다.

 

2000년대 초반은 저에게 있어서 정말 재밌는 추억이 많은 시기입니다. 고등학생 때 보았던 2002년 한일월드컵은 대한민국 사람도 월드컵 4강에 들어간 국민 중 한 사람이 될 수 있구나 하는 놀라움을 안겨주었고 2005년부터 시작했던 대학교 생활은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새로움을 많이 느낀 시기이기도 합니다. 시간을 조금 돌려서 다시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으로 돌아가보면 정말 수많은 휴대용 음악 재생기기들의 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우리나라 기업들이 거의 업계를 주도해 나갔었고, 특히 아이리버의 활약이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되는 때입니다. 삼성동 코엑스몰이 리모델링 되기도 훨씬 전 그러니까 스타크래프트 중계를 보러 학생들이 코엑스로 몰려들던 그즈음, 아이리버의 매장이 상당히 큰 규모로 위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요, 한마디로 트렌드를 주도하던 물건 중 하나가 mp3였던 시절입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기도 하죠.

 

 

강산이 한번 바뀔 시간이 흘러 음악 재생이 스트리밍 서비스 위주로 재편되었고 대부분의 mp3는 시장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여전히 판매 중인 유일한 제품이 바로 애플의 아이팟 시리즈입니다. 2002년 ~ 2004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제 머리 속에 또 하나 선명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2호선 삼성역에서 코엑스몰로 들어가는 입구 쪽에 붙어있던 iPod 광고였습니다. 색색의 배경 속 까만 색으로 실루엣만 나온 인물들은 흥겨운 춤을 추는 모습이었고, 그들의 귀에는 이어팟이 꽂혀있었죠. 애플 그리고 애플의 광고는 그때부터 아니 그 전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런 식이었습니다. 아무튼 그 당시에는 사실 국산 mp3가 훨씬 사용하기 편리했고 FM라디오, 카메라 등등 다양한 기술을 접목한 매력적인 제품을 많이 내놓았기 때문에 저는 아이팟 시리즈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군대 선임이 쓰던 아이팟 클래식을 보고 다시금 아이팟을 가지고 싶다는 욕구가 불타오르기 시작했습다. 하지만 얼마되지 않는 군인 월급으로 30만원대 후반의 아이팟 클래식을 장만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그렇게 저는 또 다시 아이팟과의 인연을 미뤄야했습니다.

 

 

아이팟이라는 기기를 직접 소유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2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옥션에서 중고로 구한 스크래치 있는 아이팟 미니 핑크가 제 아이팟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아이팟 미니는 1세대, 2세대에 걸쳐 출시되었으나 이내 아이팟 나노에 그 자리를 내어준 비운의 제품입니다. 실버, 그린, 핑크, 블루 등등 다양한 색상으로 출시되었으나 중고 시장에서 제가 구한 매물은 핑크색이었습니다. 물론 색상이 완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 아이팟이 생겼다는 기쁨이 컸기 때문에 마냥 좋았습니다. 하지만 애플은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한결 같았습니다. (안 좋은 의미로) 이미 출시된지 오랜 시간이 지난 제품을 구매했기 때문에 배터리는 거의 녹아내리는 수준이었습니다. 지금도 아이팟 미니용 배터리를 판매하는 것을 간혹 볼 수 있는데 이는 이 제품의 배터리 성능 또는 내구성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실 이 제품을 구매한 다음 실제로 밖에서 음악을 청취한 시간은 거의 20시간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신 아이팟을 도킹할 수 있는 야마하의 오디오 제품이 있었기 때문에 그 제품에 꽂아서 다양한 음악을 더 크게 듣는 용도로 사용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주 우연히 서랍 속에서 다시 아이팟 미니를 꺼내보았습니다. 그 시절의 기억도 함께.

 

 

 

긴 시간을 건너 다시 마주한 아이팟미니는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처음에는 전원이 들어오지 않아서 당황했으나 이내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그 방법은 '충전하기'입니다. 너무나 간단한 방법이지만 바로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은 제가 이 기기에 사용하는 애플 30핀-USB 케이블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야마하 오디오에 도킹 스테이션이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떠올랐습니다.) 그래도 모든 케이블을 쉽게 버리지 않는 성격 덕분에(?) 몇 분만에 애플 30핀 케이블을 찾아낼 수 있었고, 바로 충전에 돌입했습니다. 그리고 전원 케이블을 연결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듯 바로 아이팟미니가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위 사진은 처음 전원이 들어온 다음 사과 마크가 사라지면 나타나는 초기 메뉴입니다. 지금 다시 보아도 저 레이아웃과 UI는 정말 음악 재생기기라는 기기의 본질에 가장 충실한 것 같습니다. 음악을 아티스트별, 제목별, 장르, 작곡가 등으로 세분화하여 찾을 수 있음은 물론이고, 아무리 많은 양의 음악을 넣어두어도 클릭휠을 돌리는 순간 내가 원한 그 곡으로 순식간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동시대에 나온 제품들 대부분이 조그셔틀이라 불리는 4방향+클릭형 버튼을 채용하고 있었으나 그 버튼은 한번에 한 곡씩 이동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음악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찾기가 불편하고 귀찮아 질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클릭휠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금방 찾아낼 수 있습니다.

 

사실 아이팟 뿐만이 아니라 애플은 제품의 본연의 기능 이외의 것은 잘 넣어주지 않는 편입니다. 아이팟 미니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음악 재생과 팟캐스트, 게임(이건 왜 넣어준거지) 정도를 제외하면 기능이 전무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2018년 현재의 애플을 살펴보자면 마치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을 비교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기능이 다양하지만 뭔지 모를 조잡함과 불편함을 감수해야하는 안드로이드폰과 기능의 다양함은 떨어지지만 안정성이 뛰어난(사실 최근에는 특히 iOS11에 접어들어서는 안정성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아이폰의 대결 구도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드웨어적인 이야기를 떠나 안에 들어있던 나의 추억에 대해 잠시 이야기 해보도록 할게요. 지금 돌이켜보니 예전에 사용하던 음악 재생기기들은 지금의 나에게는 마치 타임머신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한 시대를 그 시절에 듣던 음악으로 회상하곤 하죠. '손에 손잡고'를 들으면 '88 서울올림픽이 떠오르고 '오 필승 코리아'를 들으면 2002년 월드컵이 떠오르듯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저 작은 아이팟에 들어있는 곡들이 저를 못해도 10년 전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지금도 듣는 아티스트가 우선 눈에 띄었습니다. 박정현, 싸이, 두번째 달 심지어 버스커버스커도 있었습니다. 벚꽃엔딩이 들어있는 것을 보니 최소한 대학교 시절에도 한 번은 이 기기를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반면에 지금은 잘 듣지 않는 가수들, 예를 들어 가인, 레이디가가 등도 볼 수 있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던 모든 음악을 절대 놓치지 않고 싶어하던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없지만 며칠마다 좋아하는 곡이 바뀌고 또 제대로 소장하지 못하는 버릇 또한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음악을 다 가지고 있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고 또 다르게 보면 얼마나 덧없는 행동인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책을 죽을 때까지 다 읽지 못하듯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음악들을 다 듣거나 소유할 수는 없는 것이죠. 이렇게까지 생각이 드니 새삼 제가 너무 세상에 찌들어 변한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더 어린 시절에 가지고 있던 어떤 집중력?이나 몰입하는 힘? 이런 건 다 어디로 갔을까.. 새삼 궁금해집니다.

 

혹시 이 글을 마주치게 된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음악 재생기기들을 한 번 찾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저처럼 잠시 잊고 지냈던 시절을 마주할 수도 있고, 지나간 추억에 잠시 잠겨 미소짓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침대 밑 또는 책상 속에서 잠들어 있을 또 다른 미니기기(이 표현을 얼마만에 써보는건지 모르겠습니다.)들을 찾아서 그 안에 있는 제 추억들을 하나하나 다시 만나볼 계획입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굳이 모든 것들을 한 번에 다 꺼낼 필요도 없습니다. 현실에 지치고 힘들때, 혹은 잠시 나를 되돌아보고 싶을 때 이 기기들이 저를 추억이라는 이름의 길로 안내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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